2018년 회고

I. 고민

알고리즘 학회장으로서의 나는 2017년에 이뤄낸 일이 있긴 했지만, 개발자로서의 나는 성장하기는 커녕 이뤄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인분의 제안을 덥석물고 Rails로 외주를 시작하긴 했지만, 학회/연구실 관련 일때문에 빠져나오게 되면서 그대로 성장이 멈춰버린채로 2017년을 그냥 보냈다. 올해만큼은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벌써 2018년이 지나간다.

올해만큼은 아무것도 안했는데 벌써 2018년이 끝나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의미없이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2017년에는 무기력에 빠진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 정체된 상태를 이어가다가, 2018년 초에 들어서서 다시 제정신을 부여잡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작년에도 약까지 먹어가면서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올해만큼은 절대로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고, 작년의 무기력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나와 달라지고 싶었다.

나는 어쩌다가 인생이 이렇게 꼬였던가?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좋은 선배를 만나서 급성장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나는 좋은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공부하고 싶은 욕심은 엄청 났는데, 내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는 선배도 만나보지 못했고, 오히려 응원해주는 선배를 만나보지도 못했고, 오히려 앞길을 막으려는 선배나 자존심을 깎으려는 선배들만 만나와서인지 학교에 대해 그다지 애정을 가지지 못했다.

학교에 애정을 가질 일도 없었고, 이렇다 할 추억을 가지지 못했던 암울한 나날을 지내오다보니 이 놈의 학교 빨리 탈출하던가 해야지... 라는 생각을 쭉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2년의 휴학기간 동안 Project Euler, CodeWars, BOJ를 알게 되면서, PS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모여서 이런 재밌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학교마다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구글이나 네이버에 열심히 검색해보기까지 했다. 아쉽게도 없었지만. 좋은 선배를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있었을리도 없을 것이다. 어느새부턴가 좋은 선배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어쩌다가 알게된 친한 후배들이 내가 겪어왔던 것처럼 좋은 선배를 만나지 못해서 손해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나만 당할 수 없지보다는 다음 세대는 나처럼 고생 안 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동아리를 처음부터 키우는 일에 손을 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복수전공을 고려하고 있었고, 학문에 한참 관심을 가지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냥 나 혼자만의 길을 걸어서 토이 프로젝트를 여러개 찍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아리의 운영을 2016년까지 어떻게 잘 이어가다가, 고학년들이 한꺼번에 졸업하면서 실질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동아리가 폐지될 위기를 민석이형이 어떻게 모면해주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름을 빌려주는 것 정도만 가능할 정도로 많이 바쁜 처지였다. 그러다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내가 학회장 자리를 이어받았는데, 남아있는 인원들은 전부 고학년이고, 이끌어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도 거의 없다시피했기 때문에, 저학년 인원을 모집하는 것이나, 어색하지 않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나, 내부 교육을 하는 것이나 모든 것들을 내가 떠맡아야 했다.

동아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스트레스였고, 동아리의 존폐에 위협을 느낀 경험을 여러번 겪기도 했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기에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번아웃이 심해지고, 무기력한 상태가 계속 이어져서 2017년을 거의 공백의 기간으로 보내기까지 했다. 억지로나마 내부 교육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일주일마다 슬라이드를 여러장 찍어내긴 했었다. 2017년 2학기에는 정신 바로 잡고 열심히 달리기로 했지만, 지루한 수업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한 경멸적인 시선, 다른 학회 활동에 눈치를 주는 듯한 이상한 문화, 모르는데서 퍼져가는 학회와 관련된 악성 소문들을 마주하면서 약 없이는 제 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세월을 보냈다.

그나마 좋았던 점은, 개발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된 지인을 통해 Rails로 프로덕션 환경에서 웹 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0년차 콤플렉스가 있었던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2017년 겨울방학 후반쯤부터 풀타임으로 개발에 참여했다. 개발을 하면서 돈을 버는 과정이 너무 황홀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학기를 시작하면서 외주를 이어가기 어렵게 되었다. 시간을 낭비하는 수준의 과제/시험때문에 잠깐잠깐 시간내서 참여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여름방학 연구실에 들어가기로 하면서부터, 외주를 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한 분을 제외하고는 사수가 없었던, 경력이 없었던 콤플렉스를 작년까지는 계속 달고 다녀야만 했다. 정말,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나는 좀 더 거칠게 날뛰고 싶었다.

2018년 5월까지는 계속해서 학부연구생 신분이었다. 학회 창설 멤버이자 학회장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학회 활동을 하는 것이나, 학부연구생으로서 연구실에서 프로젝트하느라 학교라는 범주에서 갇혀서 생활한다는 것은 나에게 족쇄나 마찬가지였다. 학교 안에서만 갇혀있고 싶지 않아서, 대외활동 여기저기 지원해보기도 했지만, 몇군데는 시간을 내기 어려우실 것 같다.라는 이유로 떨어지기도 했다.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연구실 활동도 사실 대학원/연구활동에 관심있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2017년 여름방학 때 쯤 비어있는 기간 동안 무기력에서 벗어날겸 개발활동을 여기서라도 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연구실에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폭넓은 경험의 개발자가 되고 싶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몇년 쯤 뒤쳐져 있는 테크스택을 계속해서 제자리 걸음으로 두고 싶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꼬여서 0년차인 것도 서러운데, 외부에 공유하면 안되는 보안 수준의 코드를 작성하면서 속으로 끙끙 앓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내 실력이 이렇게 정체되어 있어도 되는건지 회의감이 드는데, 자극받을 만한 사람들과 같이 협업해서 성장하고 싶기도 했다.

II. 달라진 점

나는 어떻게든 작년과는 달라지려고 발버둥쳤다. 무기력한 과거의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원인도 하나 둘씩 걷어내고 싶었다.

대외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재작년에는 전역한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전역하자마자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스터디에 여러번 참여하기도 하고, 컨퍼런스에 여러번 참여하기도 했지만, 작년에는 무기력해서 거의 아무것도 못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항상 가던 행사들을 제외하면 대외활동할 기력도 거의 없었다. 올해는 작년의 정체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무기력하게 보내서 잃은 것들이 많았던 세월을 올해에는 만회해보고 싶었다. 컨퍼런스/밋업에 대한 기록을 적자니, 어딜가나 항상 참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보니, 참관인이었던 경험을 제외하고 대외활동을 했던 썰을 간단하게 풀어보려고 한다.

쟝고걸스 쟝쟝걸

  • 1월 13일 : Microsoft 광화문 사옥에서 열린 DevOps Korea Meetup에서 자원 봉사자로 활동했다. 입장하는 시간대에는 티셔츠를 나눠주는 역할을 하다가, 중간중간에 강연을 듣기도 했었는데 DC/OS, Kubernetes, Marathon 등을 비롯한 프레임워크를 현업에서 다루는 얘기들을 보고 들었다. 연구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하긴 했었는데, 현업에서 어떻게 다루는지를 직접 보게 되면서 DevOps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 7월 20일~7월 21일 : 공덕의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Django Girls 워크숍에서 Coach로 활동하게 되었다. 같은 조였던 분들이 Django를 이용하여 그럴싸한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같은 조원 분들이 알고보니 일부분을 이미 알고 오신 분들이라서 진도가 너무 빠르게 나가다시피 했는데, 설명을 이것저것 덧붙이고, 좀 더 어려운 도전과제를 내주려고 고민했던 것 같다. Django Grils 워크숍의 인연을 통해 다양한 분들을 알게 되었고, 꾸준히 모여서 코딩하는 스프린트 모임인 PyJog 운영권한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최저점을 달리던 내 삶의 한 전환점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 12월 29일 : 10월 31일부터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에 합류하자마자, 12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파이썬 격월 세미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다보니, 행사 준비 회의도 서툴다시피했고, 인턴과 관련된 일로 바빠서 슬랙을 확인할 시간도 거의 없다보니, 업무의 흐름도 파악이 잘 안되기도 해서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이라 행사 준비에 미숙하긴 했지만, 기존에 같은 업무를 해왔던 다른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구글 드라이브와 슬랙 로그를 비롯한 과거의 기록이 있었기에 큰 실수 없이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12월이 되어서야 한빛미디어 리더스홀에서 열린 파이썬 연말 미니 컨퍼런스 에서 데스크를 지키는 역할을 했으며, 문자통역사분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역할을 했다. 데스크를 지키면서 파이콘에서 뵈었던 분들을 다시 한번 뵐 수 있어서 흐뭇하기도 했다.

나에게도 드디어 경력이라는게 생겼다.

2018년 10월, ‘이번엔 진짜 0년차에서 벗어나서 인턴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프로그래머스에서 주관하는 스타트업 겨울 인턴십 프로그램인 ‘윈터코딩’에 지원했다. 10월 27일에 있었던 코딩테스트는 너무 간단한 문제였기 때문에 빠르게 All Solve하고, 11월 초에는 개발과제에 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프로젝트를 여러번 찍어내본 경험이 있었다면 빠르게 뚝딱하고 해치울 수 있었을텐데, 주요 테크스택을 Rails에서 Django로 갈아타는 단계이기도 했고, 익숙해지려는 단계이다보니 버벅이면서 코딩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려서야 마감기한에 곁다리로 걸쳐서 끝냈다. 아래의 글에서 윈터코딩에 참여한 후기를 올린 바가 있다. DRF, React의 조합으로 프로젝트를 했는데, TDD, JWT, Redux를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https://kodingwarrior.github.io/post/2018/11/06/Participating-In-Winter-Coding.html

개발과제를 제출하고, 0년차 경험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이력서에 이것저것 내용을 채워넣고 며칠을 기다렸다. 그리고, 여러 스타트업에서 서류합격메일을 받으면서 3주에 가까운 시간을 면접으로 달려왔다. 스무스하게 면접을 본 회사가 있는가하면,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에 압도되기도 했던 회사가 있었고,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회사도 있었다. 10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했는데, 역시나 좌절감은 지원한 회사의 갯수만큼 몰려왔다. 10개의 불합격통보 메일이 연달아왔을때, 작년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만 같았다.

우울감을 유발하는 불합격통보 메일이 오가는 와중에, 아직 통보 메일이 오지 않았던 한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XXX입니다. 혹시 합격 통보 메일이 왔던 회사가 있나요?"
"어... 아직 없는데요..?"
"혹시 저희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실 의사가 있으신가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인턴에 합격했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실무 경험이었다. 현재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근무하고 싶은 회사 중 하나이기도 했다.

스스로의 변화를 위해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비를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느껴왔지만, 나 스스로를 위해 돈을 소비할 때 만큼 행복한게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속물이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유혹은 좀처럼 뿌리치기 어려웠다.

Notion 쓰세요. Notion

  1. 타임라인에서 그렇게 유명하던 Notion을 구매했다.
    • Notion을 구매했던 계기를 말하자면, 학습기록을 어떻게 남길지 고민하던 나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만의 Private Wiki 를 어떻게 구축해야할까 꾸준히 고민을 해왔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라즈베리파이에 OpenNAMU라는 위키엔진을 설치하고 외부에서 접근할 수 있게 공유기 포트 포워딩하면서 이용해왔는데, Mediawiki처럼 UX가 훌륭하지 못한게 불만이었다.
    •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Jekyll 블로그에다가 공부기록을 남기자니, 개인적으로는 TIL 만으로 공부기록을 유지하기에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었고, 블로그에는 왠만하면 정리된 글 중심으로 남기고 싶었다.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하기가 싫으니까 블로그라도 살린다는 각오로 기록을 남기긴 했었지만,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번역해서 기록으로 남기려니, 공부 양에 비해서 시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쓰는 것 자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불편한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내 방식대로 좀 더 잘 정리된 글로만 블로그를 채우고 싶었다.
    • 하지만, 블로그에 올릴 글들의 Draft를 계속 쌓아두기만 할 수는 없고, Github에 TIL 저장소를 따로 만들자니 위키방식으로 편하게 내부링크를 이어주는 방식으로 이용하고 싶었다. @johngrib님처럼 Jekyll Wiki를 만들자니 그러기에는 검증할만한 시간은 없고, 개인서버를 파서 Mediawiki를 굴리자니 설치하는데만 시간을 엄청 들일 것 같고, 이런저런 후보를 생각하던 중 타임라인에서 보이던 것이 Notion이었다. UI는 당연히 훌륭하지만, Private Wiki로 접근했을 때 UX는 어떨까하는 생각에 3주째 쓰고 있는데 제법 괜찮다.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2. 한 달에 책 사는데 드는 비용을 늘리고 있다.
    • 작년부터 학습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위기감을 느껴왔다. 어떤 방법이든 효율성을 가리지 않고 시도하던 대학 새내기 때는 시험기간만 되면 아무 생각없이 깜지수련을 하거나, 시간 물량 공세를 했던 것 같은데, 복학하면서 이것저것 일을 벌리다보니 시간을 적절히 분배해야하고, 공부하는데에도 효율을 따지게 되어버렸다. 아무 고민도 없이 공부만 했다면, 그나마 걱정하는 시간을 줄였을 수도 있지만, 아무 생각없이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집하다가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걱정되기도 했다. 개발에 발을 들이면서 필요한만큼만 골라서 공부하는 방식에 익숙하다보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부분까지 공부하는 것만큼은 집중력이 확 떨어지기까지 했다. ‘나의 학습방식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학습방법에 대한 책을 이것저것 사들이면서 읽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알게 된 책이 삼색볼펜 공부법이었는데, 2주간 이 방법을 적용해보니 학습속도가 어느정도 개선되긴 했다. 뒤늦게 알게 되서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지만.
    • 전자책 독서량을 늘리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해도, 넷플릭스보느라 시간가는줄도 몰랐고,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불안감 때문에 SNS 중독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지하철 타고 오고 가는데만 편도 30분~50분인데, 이 시간을 SNS 확인에 들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다. 넷플릭스 구독도 해제하고, 과감하게 리디북스 Select를 결제했다. 출퇴근길에 개발관련 도서를 구매하려고, 프로그래밍 대회 은상으로 받았던 15만원짜리 상품권들을 리디북스에 올인했다. 얼마전부터 관심가지고 보던 인권문제 관련 도서도 구매하고 있고, 출퇴근시간을 이용해서 전자책으로나마 독서의 스펙트럼을 늘리고 있다.
  3. 생활 패턴을 바로 잡기 위해, 수면 측정 어플리케이션(Sleep as android, SleepTown), 생산성 측정 어플리케이션(Forest)들을 구매해서 쓰고 있다. 수면패턴이 망가져서 시험을 응시하지 못하고 졸업이 꼬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달라져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패턴을 조절하는 방법을 닥치는대로 알아보고 있고, 수면패턴 조절을 보조해주는 유료앱도 이것저것 구매했다. 작업하는 동안 블랙리스트 사이트 지정해서 차단해주면서 백색소음을 깔아주는 Forest라는 앱도 한달째 꾸준히 애용하고 있다.

III. 압도적 감사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알게 모르게 주변의 여럿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기도 했다. 내가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질 수 있었던 것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D님

재작년 Lisp 세미나에서 알게 되었고, 작년 Clojure Bridge를 시작으로 친해지게 되었는데 2017년 중반까지는 Clojure 커뮤니티 관련 일을 거들어주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어나가지 못하게 되어 아쉽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죄송한 감정이 남아있기도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결혼식에 초청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었다. 항상 좋은 분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연락을 계속 꾸준히 이어나가고 싶다. 한번은 직장 근처로 놀러가서 밥도 얻어먹고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보답할 차례다.

  • 17년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준 학회 친구들

17년도 하반기 초까지는 사실 나에게 꿈도 희망도 느껴지지 않던 암흑기처럼 느껴졌었다. 내가 무슨 신념을 가지고 좋은 기회를 뿌려쳤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신입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음해에도, 다다음해에도 일을 내가 다 짊어져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까지 들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학년 멤버 중에서 일을 거들어주겠다는 인원이 하나 둘씩 보이면서, 학회장 1인 독재체제가 아닌 소수의 운영진이 협업하는 체제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핵심인원만 활동의 중심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17년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남아있던 14~16학번 멤버들이 운영진들이 학회의 운영에 어려움을 겪지않게 뒤에서 잘 보조해주기도 했다.

18년도 초에는 처음으로 신입생을 많이 모집하던 시기였어서, 신입생을 이끄는 것이나, 신입생 대상으로 스터디를 여는 것이나 모든 것이 서툴러서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도 운영이 많이 미숙하다시피했는데, 지금까지도 잘 남아있는 18학번 친구들한테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지금 운영진으로 인수인계 받은 친구들도 대부분이 18학번 신입생인 친구들인데, 다들 내가 인정하는 실력파&노력파인 친구들이라서 걱정하지 않고 은퇴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

18년도 하반기부터는 학회장 자리를 다른 친구에게 넘겨주고, 왠만하면 개입을 안하는 방향으로 일관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들을 보고 뿌듯했다. 올해 들어, 사상 처음으로 술자리(라기보다는 회식)를 가져보기도 하고, 자발적으로 스터디장을 하려는 친구들도 하나 둘 씩 생기기 시작했고, 편입생 여러명이 입부를 하면서 규모도 상당히 커지다시피했다. 억지로 학술적인 분위기를 만드려고 했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문화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나 혼자로는 절대로 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후발주자들이 잘 해결해주고 있다.

  • H

사실 SNS에서 알게 된 동생인데, 홍대 구경 좀 시켜주다가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봐온 친구들 중에 제일 멋있는 동생이기도 하고, 인생을 정말 재밌게 사는 친구이기도 해서 생각날때마다 계속 연락하고 싶다. 사람 만나면서 휴식을 취하고 싶을때 한번 만나서 드라이브를 해보기도 하고, 인생 사는 얘기도 진지하게 나눠보기도 하고, 남양주시 근처 카페에서 인생샷도 찍어준 친구인데 또 보고 싶다…

  • W님

군에 입대하기 한 달 전, 레일스 커뮤니티에서의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작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 인생의 멘토되시는 분이다. 프로덕션에 투입된 경험이 없던 나에게 도구 사용법을 제대로 익혀두라는 참교육을 주셨던 분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나에게 일을 제안해주셨던 분이기도 하고, 일로 엮일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연락을 하시려던 분이기도 했고, 인턴 이력서를 넣을때도 첫 직장을 잘 고르라면서 상담을 해주시던 분이기 때문에 이 분에게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 U님

개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롤모델이신 분 중 한 분. 트위터를 시작하시기 전부터 우러러보던 분이기도 했고, 평소에 근면성실하시고 꾸준히 정진하시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언제 한 번 강연다닌다고 하셨을때 기회를 덥석물어서 모시긴 했었는데, 흔쾌히 받아들이시는 열린 마인드에 아직도 감사함을 느낀다. 학교에 강연하러 오시고 돌아가시는 길 배웅하지 못해서 아쉽기도 한데, 언제 한번 밥이라도 사드려야겠다.

  • C님

예전이나 지금이나 느끼는 인상은 그냥 동네 친한 개발자 아저씨 정도인데, 만나서 얘기하면 얘기할 수록 배울 점이 많은 아저씨. 진지한 얘기는 그렇게 많이 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심심할때 만나서 밥 같이 먹고, 위워크 한번 놀러가고, 모여서 코딩했던 기억이 소소하게 남는다. 쓸쓸한 인생 덜 외롭게 해줘서 고마운 아저씨

  • B님

내 생일에 젠틀맨 라이언 인형을 선물해줬다.

  • 그 외 SNS 친구들

SNS 친구들의 응원이 없었으면 살아가는거 완전 막막하지 않았을까….. 사실 적고 싶은 사람들 다 많긴 한데,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이 정도로만 그쳐야겠다.

IV. 앞으로의 다짐

무기력한 나 자신을 극복했겠다. 이번에는 다시 딛고 일어서서 SWAG 넘치는 개발자가 되기 위한 여정을 다시 이어나가려고 한다. 대외활동도 많이 해보고, 오픈소스 생태계에 많이 기여도 해보고, 발표도 여기저기해보고, 번역도 해보고, 해보고 싶은 것들은 많다. 작년에는 초라함 그 자체였다면, 올해는 다시 딛고 일어서는 단계를 겪고 있고, 내년에는 멋진 개발자로 한 발짝 나아갈 것이다!

애증을 가진 학교는 이제 안녕이다.

나는 이제 학교 생태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다. 이제, 학교에 내 삶이 매몰되는 일은 없도록 하고 싶다. 나는 이제 OB 회원이다.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필요 이상으로 개입해서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진상 선배가 되고 싶지도 않고, 가끔씩 홈커밍데이나 방학 중에 깜짝 등장해서 통 크게 쏴주는 선배 포지션 정도로만 유지하고 싶다.

기본기에 더욱 충실해지기로 했다.

비록 일부 수업이 그렇게 훌륭하지 못해서 정보를 흡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들이 많았다. 웹 백엔드 개발자를 꿈꿔왔던 나에게는 특히, 네트워크 쪽 지식을 깊이 아는 것이 필수적이라 볼 수 있는데,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공부하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공부방식에 맞춰서 공부하기만 했다. 학교 수업에서 다루는 교재 자체는 훌륭하지만, 진도 나간 대로만 공부하다보니, 진도 안나간 부분을 대충 짚고 넘어가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배운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피상적인 지식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다시 복습을 해야한다.

운영체제/시스템 분야는 비록 성적을 잘 받긴 했지만, 난 좀 더 내가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공부하고 싶다. 나는 여기에 투머치토커(Too Much Talker) 공부법으로 접근해보려고 한다. 누군가가 이 분야에 대해 질문을 할 때, 질문을 한 사람이 부담스러워 할 수준으로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을 수준으로 올라가고 싶다. 책까지 쓸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운영체제/네트워크 분야를 어느 정도 아는척 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공부하게 되면, 잘 알려진 웹 서버들의 내부 동작원리를 SWAG 넘치게 바닥에서부터 설명해보고 싶다.

학교 커리큘럼의 한게로 배우지 못했던 것들도 차근차근 공부하기로 했다. 신입생때는 컴파일러가 교과과정에 들어가있었지만, 수강생이 적어서 일부 교과과정이 폐지되고 있는 지금, 컴파일러를 포함한 여러과목이 폐지되고 있다. 관심이 있었는데, 학교 커리큘럼에 없었다는 이유를 핑계로 들어서 공부하지 않는 것은 지양하고 싶다.

교육방식의 문제 때문에 학교 수업이 쓸데없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 자체로는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것을 항상 느껴오곤 했다. 탄탄한 기초지식을 기반으로, 오픈소스에 기여하는 분들을 보면 그렇게 멋져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뜯어볼 줄도 알고, 튜닝할 줄도 알고, 직접 기여할 줄도 알고, 직접 만들어서 씬을 주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고 싶다.

내가 가진 한계를,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도전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을 여기저기 벌리는 특성을 주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어느까지만 할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가능한 선까지만 일을 벌리겠다는 의미다.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일을 벌리다가 감당하지 못해서 좌절을 겪는 실수를 다시 범하고 싶지 않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무작정 자존심을 내세우고 다니다가 신뢰를 얼마나 많이 잃었을까 싶다. 사실, 자존심 세울 일도 없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경험을 좀 더 늘리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이켜보면, 토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만들어서 배포한 적도 없었다. PoC 프로젝트는 커녕 TDD를 연습하는 프로젝트를 제대로 만들어보지도 않았고, 지금 당장 과제로 주어진 일을 제외하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손을 거의 대지 않다 시피 했다. 프로젝트를 평소에 많이 연습하지 않다보니, 빨리 걸릴 수 있는 작업을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걸리기도 했었다.

빠르게 프로젝트를 만드는 연습을 해보거나, 기획적인 고민을 많이 해보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가진 Skill set을 늘리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Skill set보다는 숙련도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 나에게는 지식의 깊이 뿐만이 아니라, 주어진 마감기한 안에 얼마나 빠르게 찍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고, 제한된 시간안에 빠르게 취사선택을 할 수 있는지, 소통의 비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을만큼 감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가진 한계를 고려하면서, 짧은 주기를 가지고 한 해 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

한 우물만 파기로 했다.

고용 불안 때문에, 여기저기 헤메던 생활도 이제 그만이다. 이제서야 겨우 정착할 기회가 생겼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맞게 내 역량을 키우면서도, 내가 원하는 분야로 전문성을 강화하여 앞으로도 이 바닥에서 현역으로 살아남고 싶다. 여기저기 발 걸쳤다가 아무것도 잘하는게 없었던 과거에서는 벗어나고 싶다.


학점 관리를 실패했지만, 이력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학회 운영도 잘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 한 해였다. 내년에는 올해의 해피엔딩이 지루해보이게끔 SWAG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