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낙장불입 해피엔딩 3개년 계획

2027년 쯤에는 아마 종적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을 지속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던 2020년 쯤부터 결심했던 일이다.
꾸준히 언급은 해왔기 때문에,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결말이다.

나를 위한 해피엔딩이고 다른 주변 사람들을 위한 해피엔딩을 위한 선택이다.

극단적 선택이라기 보다는 중대한 결정에 가깝다.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으로 와닿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언젠가는 다가올 이별 준비를 위해 미리 깜빡이를 키는 것일 뿐이다.

시그널

난 확신이 차지 않으면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질 않는 편이다.
최근 들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몇 가지 치명적인 시그널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삶을 제때 정리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는다. 올해 2월 쯤에는 병원에 5일 정도 입원했던 적이 있었다. 책을 반입하지 못한 나머지 심심해서 뛰쳐나오긴 했지만, 10개월 째 계속해서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다. 계속해서 증량해서 처방받고 있다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변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자주 접하고 있는데, 지금 상태에서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불행한 상황을 만들어낼 것 같은 미래가 너무 선하다.

내 목숨의 값 어치를 싸게 여기는 마인드셋은 변하지 않는다. 내 목숨의 값 어치를 싸게 여기는 건, 단순히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 사람은 살아야겠지만, 나는 그저 아닌 것일 뿐이다. 내가 내 목숨의 값 어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 간접적으로는 다른 사람 목숨의 값 어치를 낮게 여기는 것으로도 비춰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가치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하게 될 바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정리하는 게 나은 것 같다.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다.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생각도 없어졌다. 잠을 자는 것도 사실상 도피성 수면이라서 눈 뜨고 몸뚱이를 움직여야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기 싫을 때가 많다.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도박을 하거나 경쟁이라는 것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건 머리론 이해하지만, 그냥 지쳐서 시도하기도 싫을 때가 많다. 앞으로도 모든 것이 더 귀찮아질 것이고, 계속 불만족스러운 현 상황을 한탄하면서 악순환을 반복할 것 같다. 난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무책임한 사람일 것이다.

이젠 기쁜 일이 있어도 크게 감흥이 와닿지가 않는다. 최근 들어서 기쁜 감정을 느꼈던 일이나, 좋은 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감정에 불감증이 생긴 것 같다. 정확히는 공허한 감정이 더 강하다. 사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안다. 쓰잘데기없는 동물적인 본능에 기인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더욱 회의감이 든다.

존재론적인 질문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진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무해한 것처럼 보이는 속성을 드러내면서 은근슬쩍 유해한 사람이진 않았는가?
인권활동을 지지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가?
내가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에게 무해한 사람이었냐면 아니었던 것 같다. 없느니만 못한게 아니었을까

나는 내가 정한 원칙을 잘 지키는가? 아직까지는 잘 지키는 편이다.
내가 독한 놈이라고 욕을 먹는 한이 있어도, 내가 정한 원칙은 무조건 지키는게 철칙이고 원칙을 어겨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게 앞으로도 계속될 지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존경해왔던 여러 인물들, 여러 유명 인사들이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렀다거나 권력관계를 이용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볼 때마다 늘상 들었던 생각이다. 신념을 가지고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도 그런다면, 나이가 들면 결국에는 자제력을 잃어버리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사람들 있는데서 터트릴 바에는 아무도 없는데서 터트리는게 낫다.

나는 이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인가? 내 생각엔 절대 아니다. 내가 이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이런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래에 더 추하게 늙지 않기 위해서, 적당한 타이밍에 결말을 내고 싶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케이스 스터디 해왔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의 나라면 어떻게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인간으로서 가진 한계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가진 한계 때문에 앞으로도 내가 의도하는대로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정상성

나는 정상성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면 멀 수도 있다.

난 가족이 없다. 정확히는 일시적으로나마 여러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로 의절했다. 계속해서 끈질기게 연락오는 것이 괴롭기도 했었고, 친구관계에 대한 간섭/진로 방향성에 대한 간섭/가스라이팅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해롭다는 판단이 들어서 의절했다. 더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해로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더욱 확신이 생긴 것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대가로, 명분상으로 가족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가족이 없기 때문에 인생 전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더욱 줄어들게 된 셈이다. 가족이 없는 사람을 기피하는 시선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다른 동년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주식 투자는 미국 빅테크 위주로 꾸준히 적금넣듯이 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있지도 않는다. 내일이라는게 없는 삶을 살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재테크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차를 사는 것에도 딱히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사지 않을 것 같다. 번거롭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낭만을 위해서라도 사는게 불가피하겠지만,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이기 때문에 뜬구름이나 잡는 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추억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그러다보니, 인류에 대한 애정이라는 정서에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고, 내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의 경우에는 인간 혐오라는 정서를 깔고 있다. 매매혼을 권유받을 정도로 지겹도록 외모 차별을 당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모로 인한 열등감도 병적으로 심한 편이다. 통상적인 사람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졌기 때문에, 신뢰를 주는 것도 어렵다.

정상성과 거리가 먼 삶은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상성과 거리가 먼 삶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병들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상성과 거리가 먼 삶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도 되는지 회의감이 들게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은 진작에 떠나야 했겠지만 말이다.

부정당할 수 밖에 없는 삶이라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내 선택이다. 선택지가 사실상 없지만 말이다.

앞으로의 계획

삶에 욕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어디가서 무시당할만한 실력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기록 정도는 남기고 싶다. 2024년 연말에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해외 컨퍼런스에 라이트닝 토크 지원해서 꼭 발표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고, 2025년에도 100명 이상 규모의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계획이 있고, 2026년 쯤에는 해외 컨퍼런스에서도 발표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

그 외에는, 계획이 없다. 내 삶의 행복을 위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도 없거니와 내가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혹여나, 갑자기 앞으로의 계획에 변동이 생길 만한 이벤트는 언제든지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바로는 이런 것들도 결국에는 착시 현상에 가까울 뿐이었다. 안정감이란 내 삶과는 거리가 멀 뿐이었다.
계획에 변동이 생길 만한 유혹이 든다 한들, 내가 바라는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일 것이다.
계획이 바뀌었다고 가정해도, 2027년에 맞이할 해피엔딩을 전제하고 달려왔던 삶을 후회하느라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러다가 다시 잃을 것도 없는 원래 상태로 돌아와서 악순환을 반복할 바에는 일직선으로 직진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 글이 기록물로 남게 되는 것으로 인해서 어떤 파급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제목에서도 언급했듯이, 낙장불입. 앞으로도 돌이킬 수 없도록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하는 맹세이기도 하다. 헛된 희망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희망고문하고 불필요하게 피해를 주고 다닐 바에는 확실하게 깔끔한 엔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낫다.

비록, 앞으로 3년 밖에 남지 않는 시한부 같은 삶을 살아간다지만, 나는 내가 지향하는 방향대로 살아갈 것이고, 나만의 원칙은 절대로 어길 생각이 없다. 3년 정도는 내가 목표하는대로 화끈하게 살다가, 때가 되면 적당히 정리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엔딩을 맞이하고 싶다.